한겨레스페셜
| 플래시 백

신스 팝에서 모던 록으로의 진화
Violator / Depeche Mode

01. World In My Eyes
02. Sweetest Perfection
03. Personal Jesus
04. Halo
05. Waiting For The Night
06. Enjoy The Silence
07. Policy Of Truth
08. Blue Dress
09. Clean

1990 / Mute
작성자 이태훈 | 작성일 2010.05.10 | 덧글수 (3)

유리스믹스(Eurythmics)와 휴먼 리그(Human League), 듀란 듀란(Duran Duran)과 컬쳐 클럽(Culture Club) 등 뉴 웨이브 장르를 대표하는 일군의 아티스트들이 트렌드 팝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히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음악으로의 일대 혁신을 가능케 했던 MTV의 출현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뉴 웨이브는 트렌드 팝 음악의 하위 장르로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초창기 디페쉬 모드의 음악적 정체성 또한 이러한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최소한 [Violator]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신스 팝은 말 그대로 팝이었고, 디페쉬 모드는 그저 준수한 음악성을 지닌 스타일리쉬 팝 밴드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고작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디페쉬 모드가 당대의 음악적 성과를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이유는 바로 [Violator]의 프로페셔널한 음악적 완성도와 그에 따른 컬트적인 인지도 때문이다. 전자 음악이 그 장르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발전적인 형태의 사운드 텍스쳐를 제시한 본작은 신스 팝도 심오하고 진지한 음악성을 담보로 할 수 있으며 모던 록의 범주로까지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자 음악의 또 다른 형태인 인디스트리얼 록의 전성 시대를 예견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Pretty Hate Machine]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플러드(Flood)가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그 완성도를 배가시킨 부분에서도 적절한 연관성을 감지할 수 있다.

 

훗날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와 페일러(Failure), 라쿠나 코일(Lacuna Coil)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리메이크된 명곡 ‘Enjoy The Silence’는 디페쉬 모드의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영역으로의 파급효과를 발휘하였는지 상징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으며, 클러버들과 록 마니아들을 동시에 열광시킨 ‘Personal Jesus’와 ‘Policy of Truth’와 같은 히트곡은 팝 싱글 차트 뿐 아니라 빌보드 모던 록 차트 상위권에도 랭크되는 특이한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것은 팝과 록의 경계가 비교적 명확했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본작이 향후 두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대변한다. 더불어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정체성의 일렉트로닉 록 사운드를 정립한 ‘Sweetest Perfection’과 ‘Halo’, 일렉트로닉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라 칭할만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압권인 ‘Waiting for the Night’과 ‘Blue Dress’ 등의 비히트곡도 뚜렷한 매력과 여운을 창출하고 있다. 

 

한 아티스트가 지난 10년 간 6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쌓아온 음악적 공력이 이렇게 단 한 장의 음악적 결과물로 화룡점정에 다다른 예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음악적 영감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은 대개 그들의 처녀작인 경우가 많은데, 그 상업적인 성과의 성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디페쉬 모드는 점진적이고 발전적인 아티스트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Violator]의 음악적 결과물이 놀라운 것은 강산이 두번 변한 시기를 거친 지금 접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는 것,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만한 절대적인 아우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 또한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그 퀄리티가 결정되는 대부분의 전자 음악이 지닌 한계를 극복한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팝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숙명과도 같이 탄생했고 우리가 알아왔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후대에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임이 분명하며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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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모름지기 남자라면 공학과를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잘못된(?) 전공을 택하게 되었고, 덕분에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던 수학, 물리에 기초한 각종 역학 과목들과 씨름하며 보낸 4년 간의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보다 아티스트와 노래 제목, 빌보드 차트 순위를 더 잘 습득했으며, 순전히 음반을 구입하러 가기 위한 목적에 여자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압구정동과 종로 3가를 선호했던 것을 상기하면 전공 분야와는 전혀 다른 음악 관련 업종에 종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낙천적인 현실주의자가 될수 있었으니, 짧다면 짧은 인생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http://blog.naver.com/ryuho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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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s me2DAY 2010/05/11 02:06

havaqquq의 생각…

‘신스팝도 심오하고 진지한 음악성을 담보로 할 수 있으며 모던록의 범주로까지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엄마 젖 먹던 신스팝이 사회인문과학 책 좀 읽고 자라면 모던록이 되는건가. 박사학위 따면 클래식록? 원래 모던록이 클래식록의 심오함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건만….

이태훈 2010/05/11 10:23

어떤 의도로 댓글을 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라는 용어 자체의 사전적인 의미에만 너무 집착하시는 것 같군요. 이 문장에서의 진화란 하위 장르에서 상위 장르로의 극단적인 진보를 의미하려 했던게 아니라 시대의 변천과 요구에 따라 다른 장르의 요소를 포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의 언급이었습니다. 신스 팝이 하위 장르라는 식의 무분별한 정의를 의도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전의 신스 팝 장르가 다분히 소비지향적인 트렌드 취향의 음악으로서 선입견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Violator]는 그런 관점을 허물었던 기념비적인 음반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죠. 여기서 클래식록이니 심오함에 대한 반발이니에 대한 언급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논리의 비약적인 측면이 강한 표현처럼 여겨지는군요. 결론적으로, “진화”라는 단어를 조심해서 사용해야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신 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

thismc 2010/06/28 12:27

지나가다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좋은 건 좋은 겁니다 나이 40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개인적으론 violator 를 기점으로 음악이 좀 변했다고생각합니다 working in my shoes까지 좋았고 보컬이 바뀌면서 멀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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